거절당한 작품과 선택된 작품/개선이 아닌 개악

번외편 - 클림트의 빈 대학교 천장화

아리에시아 2022. 6. 5. 13:58

개선이 아닌 개악...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클림트의 천장화를 대체하게 된 작품은 미술사에서 딱히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일단 번외편으로 넣습니다.

 

1900년경, 클림트는 빈 대학교에서 학문을 주제로 한 천장화를 의뢰받습니다. 대학교에서는 의학, 철학, 법학 등 전통적인 학문 분야에 대한 그림을 기대했지요.

그림을 의뢰받을 때만 해도, 클림트는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화풍으로 인기가 많은 화가였습니다.

 

하지만 빈 대학교에서 천장화를 의뢰받을 시기, 클림트는 슬슬 특유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기 시작한 때였지요.

그리고 후대에는 클림트풍 화풍으로 여겨지게 된 분위기의 그림이 나오게 됩니다.

클림트가 그린 의학, 철학, 법학 그림입니다.

고전적인 화풍을 기대한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만족하기 힘든 그림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교 건물 같은 공공장소에 전시하기에 적합한 화풍이라고 하기에도 힘든 그림이 되었지요. 최대한 좋게 표현해도, 분위기가 이질적인 그림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저런 화풍의 그림을 공공장소에 내건다면, 좋은 말을 듣기 힘들 겁니다. 그리고 1900년경 빈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대학교 공공장소에 어울리는 그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그림이라는 것과, 공공장소 장식화라는 특정 목적에 부합하는지는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작품 자체의 예술성은 높아도, 주문자를 불쾌하게 만든 작품이라면 주문자 입장에서는 화낼 만하다고 여기는 입장이기는 합니다. 돈을 받고 주문받아 만든 작품이라면, 예술성과 별개로 주문자의 조건에는 맞춰야 마땅한 도리라고요.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처음부터 그런 조건을 받아들일 주문자나 후원자를 찾아야 한다고요.

벤저민 브리튼이 작곡한 음악에서 이미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지요.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축하 오페라인 <글로리아나>나, 일본 황실 2600주년을 축하하는 취지로 의뢰받은 <진혼 교향곡> 등에서, 주문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작품의 예술성이 높아도 불만족스러워할 만하다고 생각한다고요.

http://blog.daum.net/109

 

하지만 그걸 제외해도 공공장소라는 전제가 깔린다면 비슷한 반응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시 빈 대학교 측의 반응은, 대학 공공장소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수준을 넘어서 훨씬 과격했습니다.

당시 교수를 비롯한 대학 관계자들은 저런 그림을 대학교 건물의 천장화로 택할 수 없다면서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그 중에는 저 작품더러 혐오스럽다는 식의 반응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클림트는 결국 의뢰비만큼의 돈을 마련해 대학 측에 돌려주면서 이 작품들을 돌려받았습니다.

일단은 블로그에서 '개선이 아닌 개악' 카테고리에 넣었습니다만, 이 작품은 이른바 개선 내지 개악으로 수정하지조차 않은 것입니다. 클림트 본인이 거부한 이유가 큽니다만, 설사 클림트가 작품을 수정하겠다고 했어도 대학 측이 받아들였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작품을 완전히 새로 그려야만 할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클림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검열은 이제 충분하다. 내 작업을 방해하는 시시하고 하찮은 것들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가겠다."

클림트는 이 사건 이후 공공기관 작품 의뢰는 일절 받지 않았습니다.

저 사건이 잘 마무리되었다면, 클림트의 화풍으로 공공기관의 벽화 등을 볼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빈 대학교 천장화 사건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는 미지수입니다만, 저 사건 이후 클림트가 본격적으로 주문자의 조건에 맞춰 그리는 의뢰 대신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그림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클림트 특유의 화풍이 본격적으로 꽃피우게 되지요.

 

빈 대학교에서는 저 사건 이후, 클림트의 천장화를 걸기로 한 곳에 어떤 장식이나 작품으로 대체했는지조차 변변한 자료를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훗날의 이야기입니다만, 설사 저 천장화가 빈 대학교에 원래 계획대로 걸렸다고 해도, 세계 2차 대전 즈음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했을 때 무사히 보존되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히틀러는 19세기 후반부터 유행한 고전주의풍 이외의 그림을 퇴폐미술 운운하면서 대놓고 불태웠는데, 클림트의 저 작품도 거기에 해당되었을 가능성이 꽤 높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클림트가 되사들인 저 천장화는 클림트의 후원자가 다시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1945년. 저 그림이 보관된 것으로 알려진 건물이 전쟁통에 폭격을 받아 불타게 됩니다.

저 그림이 그 때 같이 불탔다고 명시한 자료는 없다고 합니다.

당시 특히 귀한 작품이 으레 그랬듯이, 다른 곳으로 옮겨져 안전하게 보관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전망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 작품은 1945년 파괴된 것으로 추측될 뿐, 그 때 파괴되었다고 명확하게 쓰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1945년 폭격 이후 저 천장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이때까지는 없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나마 극적으로 저 그림이 발견된다면 더없이 기쁜 일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가능성은 아무래도 그리 높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