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1년, 미칼렌젤로 부오나로티는 꼬박 8년 동안 전념했던 작품, <최후의 심판>을 완성합니다. <최후의 심판>은 교황을 선출하는 장소로 유명한 시스티나 경당의 벽면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성경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 교리를 주제로 삼은 작품입니다. 성경에는 이 세계가 멸망하는 최후의 날,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여 지상의 사람들을 상대로 심판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때가 되면 죽은 자가 되살아나 산 자와 함께 심판을 받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심판하여 천국에 가게 될지 지옥에 가게 될지를 판결한다는 교리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카톨릭 종교화에서 자주 다루어진 주제인데, 대개 정중앙에 심판을 주재하는 예수가 있고 양옆에 천국과 지옥이 대비되는 구도로 묘사되며, 천상세계와 지상세계가 그려집니다. 천상세계에서는 천사와 성인 성녀들이 있으며, 지상세계에서는 무덤이 열리며 죽은 자가 살아나오는 모습이 거의 필수적으로 묘사됩니다. 미켈란젤로는 바로 이 주제를 시스티나 경당 벽화에 묘사한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완성되어 공개되자,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의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경탄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악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걸작에 압도되어 경탄하는 반응,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신성한 종교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 경악하는 반응으로 나뉜 것이었습니다.
<최후의 심판>에 대해 경악한 사람들은, 이 작품에 대해 저속하다거나 과격하다는 평을 내렸습니다. 특히 당시 교황의 의전을 담당하던 비아치노 다 체네노 추기경이 <최후의 심판>에 대해 목욕탕이나 어울릴 그림이라는 평을 내린 일은 오늘날까지도 회자될 정도입니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비아치노 다 체세나 추기경은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그리는 도중에도 수시로 미켈란젤로의 심기를 거스르는 언행을 해서, 미켈란젤로는 앙갚음삼아 지옥의 심판관 미노스의 얼굴에 비아치노 다 체세나 추기경의 얼굴을 그려넣었다고 합니다. <최후의 심판>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몸에 뱀을 감고 있는 인물이 바로 미노스입니다. 이 일화가 실제 진실인지 그저 유명한 소문인지는 차치해도, 비아치노 다 체세나 추기경과 미켈란젤로가 어떤 사이였는지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런 소문이 돌면 사람들이 믿어버릴 정도로 살벌한 관계였다고요.
오늘날 <최후의 심판>을 보면, 왜 그렇게까지 난리가 났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수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평가 기준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현대 사람들의 눈에는 <최후의 심판> 정도의 그림은 딱히 저속해보이지도, 과격해보이지도 않습니다. 이 작품보다 훨씬 극단적인 표현이 넘쳐나는 시대이며, 근대나 현대의 명화에도 <최후의 심판>보다 훨씬 표현이 과격한 그림은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16세기의 살벌한 반응에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비단 그 이유때문만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최후의 심판>은 "수정"된 것입니다. 작품이 완성되고 20여년이 지난 1564년, <최후의 심판>에 덧칠을 하라는 결정이 내려졌고, 이 결정이 집행된 것입니다. 이 덧칠 명령이 내려지기 전인 1549년, 마르첼로 베누스티는 이 작품의 모사화를 그렸는데, 이 모사화를 보면 "수정"되기 전 미켈란젤로의 원본 작품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르첼로 베누스티가 1549년 그린 <최후의 심판> 모사화입니다. 그림 위쪽 중앙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하나님 모습과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추가로 그려져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 원작은 건물 구조에 따라 위쪽이 아치 두 개가 나란히 있는 형대로 되어 있어 사각형 형태 기준으로는 약간의 빈 공간이 생기는데, 이 공간을 모사화에서는 다른 작품의 디테일로 채워넣은 것입니다. 비단 마르첼로 베누스티뿐만 아니라,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원작에서 손상되거나 빠진 부분을 모작에서 임의로 채워넣어 그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누드로 그려져 있으며, 인물들의 성기도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도 전통적인 종교 도상에서 예수를 묘사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신처럼 묘사했다는 평도 추가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종교적 위엄이 없고 엄숙한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저속한 그림이라는 식의 평이 나온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성인 성녀들에게 후광이 묘사되지 않았다는 것도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는데, 훨씬 파격적인 다른 묘사 부분에 묻혀서 오히려 별달리 언급되지 않을 정도니까요.
프라 안젤리코가 1425년 그린 <최후의 심판>입니다. 최후의 심판에 대한 전통적인 종교적 도상에 충실하게 묘사된 작품입니다. <최후의 심판>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 것을 온당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보았을 때, 과연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 정중앙의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디테일 표현은, 사전지식 없이 작품을 감상하면 같은 인물을 묘사했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판이합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최후의 심판>과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 그리스도 부분만 따로 떼어 편집한 이미지입니다. 화풍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 의상 형태 등이 전혀 다릅니다.
그리스 신화의 태양의 신인 아폴론을 조각한 <벨베데레의 아폴론>입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최후의 심판>에서 묘사된 예수와 이 조각상의 아폴론을 비교해보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예수가 예수 그리스도보다 그리스 신처럼 그려졌다는 평을 받은 이유를 곧바로 납득할 수 있게 됩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완성되었을 때 논란이 자자했지만, 당시 교황이었던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와 이 작품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3세가 선종한 뒤, 종교개혁을 막기 위해 종교화를 보다 엄격하게 단속하게 되었다는 등의 외부적 요인이 겹쳐져, <최후의 심판>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결정이 내려집니다. 이 때 무려 <최후의 심판>을 철거하고 새로운 작품으로 대체하자는 의견까지 제시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옷 부분을 덧칠한다는 절충안이 채택되었습니다.
이 덧칠 작업을 맡은 사람은 다니엘레 다 볼테라라는 화가였습니다. 볼테라는 미켈란젤로의 제자로서, 미켈란젤로를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덧칠된 후의 <최후의 심판>을 보면 옷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천이 성기 부분만 부자연스럽게 가리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이것은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최대한 덧칠을 덜 하면서도 성기 부분을 가리는 구도를 구상해서 덧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후 다니엘레 다 볼테라는 '브라게토네'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 말의 뜻은 '기저귀 채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일화 외에는 오늘날 거의 잊힌 이름이 되었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엄격한 종교적 도상과는 거리가 먼 작품입니다. 다른 장소였다면 자유로운 예술적 해석 정도로 넘어갔겠지만, 시스티나 경당 같은 종교적으로 거룩한 장소에 그 시대에 이렇게 파격적인 그림을 그렸으니, 논란이 생겨날 만했습니다. 게다가 외부적 요인에다 시스티나 경당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겹치면서, "이렇게 저속하고 과격한 그림"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여론이 생겨나는 지경에 이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작품 자체에는 최소한의 덧칠을 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만, 미켈란젤로의 걸작에 작가의 의도와 무관한 덧칠이 가해지고 결과적으로 작가의 의도가 손상되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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