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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르의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제>와 개인 잡상

아리에시아 2019. 1. 4. 22:40

이번 포스트의 주제는 일단 신고전주의의 거장, 화가 앵그르의 유화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제>입니다만...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개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글이 되겠습니다.






이 그림은 아리오스토의 서사시, <광란의 오를란도>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광란의 오를란도>는 돈 키호테가 기사문학의 대표작으로 입에 달고 다니는 작품으로, 기사문학의 금자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의 내용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안젤리카라는 아가씨가 바다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지니까, 로제라는 기사가 그 괴물을 물리치고 아가씨를 구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제가 이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습니다. 그 때 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어린이용 책들의 목록을 만든 뒤, 신청받아서 구매할 수 있는 도서 행사를 하고 있었지요. 그 때 저는 별자리 신화 전설을 다룬 책을 사게 됩니다. 표지 디자인은 기억하지만, 저자나 출판사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군요. 별자리 책에는 워낙 비슷비슷한 제목과 디자인이 많아서요. 내용도 비슷비슷하니, 딱히 중요하지는 않겠지요.


별자리 설화와 무관한 저 그림이 별자리 책에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신화를 이야기하는 챕터에서, 저 그림을 삽화처럼 넣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안드로메다는 바다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지고, 메두사를 물리친 용사 페르세우스는 귀환하는 와중에 안드로메다를 보고 구해주지요. 그리고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해낸 보상으로 안드로메다와 혼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책에서는 이 신화에 대해 설명하는 챕터에서 앵그르의 저 그림을 도판으로 넣은 뒤, 이런 설명을 붙였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광란의 오를란도>라는 작품에서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이야기라는 내용이었지요. 여담으로 그 책에서는 로제가 아니라 제로라고 되어 있어서, 저는 한동안 '안젤리카'와 '제로'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는 헛고생을 하기도 했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꽤 괴상한 그림 선정이었습니다. 앵그르의 저 작품은 앵그르의 대표작으로 꼽힐 정도의 명화이기는 합니다. 아마 기사문학에서 소재를 얻은 그림 중에 가장 유명할지도 모릅니다.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이야기를 그린 명화 중, 앵그르의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제>만큼의 완성도와 유명세를 지닌 작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요.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이야기를 묘사한 명화라고 하면, 숫자는 많지만 딱히 첫번째로 떠올릴 만한 작품도 영 애매하고요.


그런데 그럴 거라면, 차라리 성 게오르기우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나았을 것 같단 말이지요.... 성 게오르기우스의 이야기도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진 아가씨를 구해낸다는 모티브는 거의 동일하고, 관련 작품도 많고, 무엇보다 영국 왕실의 수호성인처럼 여겨지는 등 훨씬 유명하기도 하고요. 어쨌든 저는 저 도판 선정 덕에, <광란의 오를란도>라는 작품과 로제라는 용사가 안젤리카라는 아가씨를 구하는 이야기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훨씬 뒤에 <광란의 오를란도> 완역본이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완역본을 읽어보았지요.

그리고 놀란 것이 있었으니.... 앵그르 그림에 나오는 이야기는 스토리 전체로 보면 빠져도 딱히 지장 없을 만큼, 말 그대로 지나가는 에피소드 외의 의미는 없습니다. 애초에 안젤리카와 로제 모두 각각 서로 다른 사람들과 맺어집니다. (이탈리아어 원작 완역본에서는 로제는 루지에로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또 뒤집어졌던 것이 있었으니... <광란의 오를란도> 설정상, 안젤리카는 중국 공주입니다.

정말입니다.


중국의 왕 이름이 갈라프로네, 그리고 그 딸의 이름이 안젤리카랍니다.

갈라프로네라는 이름은 도저히 중국 이름으로 보이지 않지만, 전 이 이름 자체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중세 독일 서사시, 볼프람 폰 에셴흐의 <파르치팔>을 본 뒤에 읽었거든요. <파르치팔>에서는 이슬람교도가 가공의 신을 추앙하는가 하면, 로마 신화를 믿고 로마 신화의 신을 찬양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래서 전 갈라프로네라는 무국적풍 이름에 대해서는, 유럽인이 이국적 이름을 지어냈다는 정도로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안젤리카는 너무 심하잖아요. 확연한 유럽풍 이름, 유럽에서 사용된 여자 이름, 게다가 천사를 뜻하는 angel 앤젤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투란도트>에서 중국 관료 이름이 핑, 팡, 퐁으로 나오는 것이 비견할수 있을 듯합니다. http://blog.daum.net/ariesia/49


중국 공주 이름이 안젤리카.

그러니까.... 앵그르의 그림에서, 나신으로 사실에 묶인 아가씨가 설정상 중국인이라는 겁니다! 어딜 봐서 중국인이냐고 묻고 싶어지는 외모군요. 누가 봐도 금발 백인인데요.



그리고 저 아가씨를 구하는 용사, 로제/루지에로는.... 설정상 사라센 기사입니다.

사라센이란 십자군 등 중세 유럽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씩 듣게 되는 이름이지요. 바로 이슬람권을 가리키던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 갑옷을 입고 괴물을 물리치는 기사는 설정상 이슬람권 인물입니다....


설정상 혈통으로만 따지만, 로제/루지에로는 유럽인이기는 합니다. 사연이 좀 복잡한데 아주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로제/루지에로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정처 없이 헤매는 신세가 되었다가 아이를 낳고 죽었는데, 여차저차 해서 이슬람권 사람들이 그 아이를 거둬서 키웠습니다. 그리고 소설 후반부에서는 뛰어난 유럽인 여기사인 브라다만테와 사랑에 빠지고, 기독교도로 개종하며 브라다만테와 맺어집니다. 아무리 남자 쪽이 개종했다고는 하지만, 중세 기사문학에서 기독교도 여자가 이슬람교도 남자와 맺어지는 경우는 굉장히 이색적이지요. 개종하게 된 계기도 좀 웃기다면 웃기고,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인데, 목숨이 위험할 때 '살아난다면 브라다만테가 알려준 신을 믿겠다'고 생각하던 타이밍에 목숨을 건져서, 개종하게 되었다는 설정입니다......


그림의 갑옷도 아무리 봐도 이슬람권 갑옷처럼은 도저히 안 보이는군요. 장식도 유럽풍이 확연합니다. <광란의 오를란도>가 쓰여진 15세기에는 오늘날의 고증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그 시절 문학작품이나 삽화에서는 옛날 사람들도 외국인들도 모두 당대 유럽인같은 옷차림을 하고 다녔으니, 작가 아리오스토가 의도한 외양은 저런 그림이 맞겠지만 말입니다.


로제/루지에로는 일단 혈통으로 따지면 유럽인 쪽입니다. 하지만 사라센/이슬람 기사라는 설명만 놓고 보면, 이슬람 인물이랍시고 유럽인 외모의 남자를 그려놓은 것이 좀 황당하지요. 앵그르가 <광란의 오를란도>의 로제/루지에로는 유럽인 혈통이라는 설정까지 파악한 뒤, 유럽인 외모로 그린 걸까요? 저는 관련 자료를 본 적이 없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국 공주라는 안젤리카를 저런 금발 백인으로 그린 걸 보면, 로제/루지에로의 설정은 더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았든 몰랐든 어차피 유럽인 외모로 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네요.



돌이켜 보면, 그 별자리 책은 제가 그리스 신화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로즈마리 셧클리프가 평역하고 이윤기가 번역하고 앨런 리가 그림을 그린 책을 도서관에서 보면서, 저는 그 쪽 영역에 푹 빠지게 되지요. <트로이아 전쟁과 목마>와 <오뒤세우스의 방랑과 모험>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반지의 제왕> 일러스트로도 유명한 앨런 리의 정교한 그림에 저는 푹 빠졌고, 본격적으로 그리스 신화와 서사시 계열 작품을 찾아보게 됩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천병희의 번역본이라면 일단 마구 읽어보고, 신화나 서사시 작품이 번역되었다고 하면 일단 또 읽어보고 있더군요. 그리스 로마 신화 계열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의 서사시와 신화도요.


저는 서양미술 사조 중에서 신고전주의를 가장 좋아합니다. 너무 엄숙해서 뻣뻣한 느낌을 준다는 평도 많지만, 전 그 엄숙한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그 앨런 리의 그림을 좋아한 것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 제가 처음으로 따라 그려보고 싶던 그림도 앨런 리의 그림이었지요. 초등학생이 그 화려하고 정교하고 신비로운 그림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장렬하게 실패했지만요.


서사문학과 신고전주의를 좋아하게 된 것을 딱히 후회한 적은 않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저 세 권의 책이 계기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서사 계열 작품을 좋아하게 될 일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이런 게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