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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해치는 패션과 개량한 패션

아리에시아 2016. 11. 12. 11:17

유행하는 패션스타일이 움직이기 불편하거나 신체 건강에는 해로운 것은 유럽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일어났던 현상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유행하는 스타일 자체를 버리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유행하는 패션이나 아름다움으로 통용되는 외양을 위해서 갖가지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유행하는 패션에서 특히 불편하거나 악영향을 끼치는 부분을 개량해서,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제대로 소매를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뻣뻣한 벨벳 옷감을, 부드러운 천으로 소매를 만든 뒤 벨벳 안에 비어져보이게 만든 소매 장식이나, 소매와 옷을 연결하는 부위를 장식 요소로 만든 중세 말기~ 르네상스 초기 패션과 비슷한 발상일지도 모르겠네요. http://blog.daum.net/ariesia/50 이번 글에서는 그렇게 고안된 패션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러프 Ruff'나 '주름깃'은 르네상스 시대 패션에서 단연 압도적으로 유명한 요소입니다. 목을 뻣뻣하게 주름잡은 천으로 둘러싸는 것이지요. 러프는 위엄을 더없이 잘 나타내는 패션으로 각광받았으며, 크게 유행했습니다. 어쩌면 러프는 가장 위풍당당하고 위엄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패션 스타일일지도 모르겠네요. 르네상스 중기에 출현한 러프는 바로크 초기까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행했습니다. 그리고 후대로 갈수록 주름깃 장식이 더욱 커졌지요.

 

 

바로크 시대 가장 영향력 있고 유명한 화가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1606년 그린 <브리지다 스피놀라 도리아 후작부인의 초상>입니다. 당시 유행했던 러프를 목에 착용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루벤스는 <플랜더스의 개>에서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예수님 그림'을 그린 화가이기도 합니다. 루벤스 이름을 <플랜더스의 개>를 보고 처음 알게 된 사람도 많을 것 같네요.

 

 

러프는 마치 목에 바퀴를 걸어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빳빳한 주름장식이 돋보이는 장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빳빳하게 풀을 먹인 장식은 너무 뻑뻑해서 목을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때로는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위풍당당한 위용을 위해서라면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너무나도 불편한 러프는 결국 다른 형태로 대체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러프의 기본 개념은 채용하고 러프의 극단적인 불편함을 개량한 패션이 착상되었으니, 바로 휘스크 칼라와 반 다이크 칼라입니다.

 

휘스크 칼라 Whisk Collar는 빳빳한 레이스 장식을 옷의 목선 주위에 세워서 두르는 형식의 패션이었습니다. 그리고 반 다이크 칼라 Van Dyck Collar는 레이스 장식을 목 주위에 늘어뜨리는 형태의 장식이었지요.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의 왕비였던, 안느 도트리슈/오스트리아의 안느의 초상화입니다. 역시 루벤스 작품입니다. 휘스크 칼라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안느 도트리슈는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그 프랑스 왕비이기도 합니다.

 

 

반 다이크가 그린 영국 국왕 찰스 1세의 3중 초상화입니다. 세 방향에서 바라본 찰스 1세의 모습을 화폭 하나에 중첩하여 그렸습니다. 레이스 장식을 늘어뜨린 형태의 칼라 장식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반 다이크는 영국 궁정화가로서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는데, 반 다이크의 초상화 중에 이런 레이스 장식을 착용한 작품이 많아서 '반 다이크 칼라'라 불리게 됩니다.

 

 

르네상스 이래 수백 년 동안 유럽 상류층 사교계에서 유행한 의상들은 하나같이 불편한 옷들이었습니다. 특히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이 발명된 이래,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이는 패션이 유행하면서 상류층 여성 의상은 더한층 불편해집니다. 코르셋이 출현한 이래 20세기가 되기까지, 코르셋 없는 패션이 유행한 것은 1800년을 전후해 약 사반세기 남짓한 동안의 짧은 기간밖에 없었습니다. 1780년경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늘날 원피스나 잠옷같은 홑겸 목면 드레스를 선보인 이래,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가 20여년 동안 유행한 것입니다.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는 허리선 대신 가슴 바로 아래를 조인 통짜 라인 드레스로, 얇은 흰 천을 두른 듯한 옷이었습니다. 유럽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그 시대를 동경하던 고전주의 시절, 그리스 조각상 같은 패션을 지향하면서 출현한 의상이지요. 예전 포스트에서 언급한 적 있던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에서 레카미에 부인이 입고 있는 드레스가 바로 이 옷입니다. http://blog.daum.net/ariesia/5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베르니나크 부인의 초상화>입니다. 1799년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런 얇은 천을 한 장 두른 듯한 의상은, 당시 유럽 기후에서는 너무 얇았습니다. 주름 장식이 두드러지는 그리스 조각상 같은 느낌을 추구한답시고 일부러 물에 젖어서 옷이 달라붙게 하는 것이 유행하는가 하면, 속이 비칠 정도로 얇은 천으로 만든 드레스가 유행하면서 이 문제점은 더욱 심해졌지요. 게다가 소매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세 이래 유럽 지역의 의상에서는 소매가 손목 부근까지는 덮었고, 팔꿈치가 노출되는 옷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팔 거의 전부가 드러나는 옷소매란 굉장히 파격적이었지요. 그런데 가뜩이나 얇은 옷에 소매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 보온성이 더욱 떨어지는 옷이 되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숄을 두르기는 했지만, 숄은 미봉책 이상은 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프랑스를 비롯해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가 유행한 지역에서는, 감기나 폐렴에 걸리는 여성이 속출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의 황후였던 조제핀도 나폴레옹 전쟁 와중에 러시아군이 파리를 함락했을 때, 러시아군 총사령관인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조제핀을 방문했을 때 맞이한 직후 폐렴에 걸려 죽었는데, 이 드레스 때문에 폐렴에 걸렸다는 것이 거의 정설입니다. 점령군 총사령관이자 러시아 황제를 맞이하면서 조세핀은 당시의 여성 정장 차림으로 정원을 산책하며 안내하는 역할을 했는데, 추운 기후에 저 얇은 드레스를 입었다가 폐렴에 걸렸다는 것이지요.

 

 

영국의 풍자화가 조지 크룩생크가 1796년 그린 풍자화입니다. 두터운 옷감의 의상과 러프 장식 등 르네상스 시기의 의상을 입고 있는 여성과, 엠파이어 스타일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같이 그렸지요. 르네상스 시기의 의상 아래에는 옷을 너무 많이 입었다는 문구가, 19세기 후반 유행했던 엠파이어 스타일 드레스 아래에는 옷을 너무 적게 입었다는 문구가 쓰여져 있습니다.

 

 

1790년경, 영국의 2대 스펜서 백작인 조지 스펜서는 엠파이어 스타일 드레스에 보온 효과를 줄 수 있는 패션을 고안합니다. 볼레로처럼 가슴을 덮는 길이의 짧은 재킷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재킷은 가슴을 덮을 정도의 짧은 길이에, 긴 소매를 갖춘 형태였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연미복 일부분이 불에 탄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입증할 만한 증거가현존하지는 않고 반박하는 증거도 없는 상태로, 어디까지나 그럴싸한 일화로만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재킷은 착안자의 이름을 따서 '스펜서 Spencer' 라고 불립니다. 스펜서 재킷은 일반적으로 파란색, 붉은색 등의 색깔을 지니고 있었는데, 순백색이 일반적이던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 위에 스펜서 재킷을 겹쳐입으면 순백식 드레스에 다채로운 유채색 패션 요소를 더하는 작용도 하게 되었지요.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 위에 스펜서 재킷을 착용한 패션을 그린 그림입니다. 엠파이어 스타일 드레스가 유행에서 사라진 뒤에도, 양모 재질 등 두터운 옷감으로 만든 덧옷을 입는다는 발상은 지속적으로 살아남아 다른 여러 의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엠파이어 스타일이 유행하고 반 세기 가량 지났을 때, 유럽 패션에서는 전례 없이 부풀린 드레스가 유행합니다. 바로 크리놀린 드레스입니다. 한껏 부푼 버팀대로 드레스 치마를 인위적으로 부풀리는 패션입니다. 마거릿 미첼의 소설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소설 원작의 영화 등에서는 풍성한 치맛자락과 프릴로 겹겹이 장식된 드레스가 묘사되는데, 이런 드레스가 바로 크리놀린 드레스입니다. 이 드레스는 한 벌에 20미터 이상의 옷감이 들 정도로 비싼 옷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아라벨라>의 배경이 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http://blog.daum.net/ariesia/45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였던 엘리자베트 황후의 초상화입니다. 크리놀린 드레스의 초상화 중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크리놀린 드레스 중에서는 버팀대가 간소한 스케일에 속합니다.

 

 

몇 미터 둘레의 드레스 자락에, 버팀대로 한껏 부푼 의상은 많은 풍자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19세기 풍자화로 유명한 프랑스 판화가인 오노레 도미에는 크리놀린 드레스를 주제로 한 풍자화를 여러 점 남겼는데, 그 중의 한 점입니다. 큰 버팀대를 착용한 널찍한 크리놀린 드레스 떄문에, 마차에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오노레 도미에의 크리놀린 드레스 풍자화는 풍자를 위해 과장한 그림이 많은데, 이 그림은 드물게 실제로 있었던 드레스의 크기 정도로만 묘사한 작품입니다. 실제로도 웬만큼 큼지막하고 널찍한 크리놀린 드레스를 입으면, 마차에 제대로 타지 못했다고 합니다. 

 

크리놀린 드레스는 허리가 가늘고 드레스 치마가 풍성하고 클수록 실루엣이 예쁘다고 여겨졌기에, 코르셋을 더한층 유행시킨 옷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불편했지요. 치마 자락이 너무 넓어서, 의자에 제대로 앉을 수도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버슬 스타일 드레스'가 등장합니다. 풍성한 옷자락을 엉덩이 쪽에 모아 장식하고, 정면 쪽의 치마는 별도의 버팀대가 없어 통짜 라인에 가까운 옷이었습니다.

 

 

르누아르가 그린 <파리지엔느/파리 아가씨>입니다. 새파란 드레스와 버슬 드레스가 인상적인데, 당시 파리에서 한참 유행하던 의상입니다.

 

 

제임스 티소가 1874년경 그린 <배 위의 무도회>로, 선상 파티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버슬 스타일 드레스를 입은 여성 여러 명이 묘사되어 있는데, 특히 정중앙의 하얀 드레스는 버슬 스타일 드레스의 교본과도 같은 디자인입니다. 

 

 

19세기 말 패션 잡지의 컬러 화보 중, 버슬 드레스를 묘사한 삽화입니다. 버슬 드레스에서는 저런 그림처럼, 엉덩이 쪽에 땅에 끌릴 정도로 길고 화려한, 꼬리 같은 장식을 부착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앞쪽은 부피 있는 장식이 거의 없이, 전체적으로 평평한 형태를 띠지요.

 

 

패션 중에서는 기존의 패션을 응용한 경우도 많지만, 기존 패션의 문제점이나 단점을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고안된 패션도 여럿 있다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동시에 아무리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어도 그 이유만으로 특정 패션이 사장되는 일은 잘 없다는 것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지요. 아무리 비난받거나 불편하거나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 패션도, 그 이유만으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사라지는 것은 새로운 패션이 유행할 때지요. 문제시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개량한 패션이 고안되는 경우가 차라리 더 많을지도 모를 정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