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역사의 만남/전통파와 혁신파

번외편-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

아리에시아 2014. 1. 4. 12:56

음반시대가 개막한 이후 오페라계에서는 라이벌로 호칭되는 성악가가 여럿 배출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벌 관계라면, 단연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일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 둘이 과연 일반적인 의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일까?"라는 생각이 들지요.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가 라이벌 관계를 구축한 이유 중에는, 음반사 대결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1950년대 즈음 오페라 음반계는 EMI와 DECCA가 양분하고 있었는데, 마리아 칼라스는 EMI 소속이었고, 레나타 테발디는 DECCA 소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음반사는 두 가수를 마케팅의 전면에 내세웠고요. 자연히 둘을 라이벌처럼 여기게 될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칼라스와 테발디의 가창 성향은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레퍼토리도 거의 겹치지 않아요. 두 가수가 모두 유명했던 배역은 <토스카>의 여주인공인 플로리아 토스카 역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테발디는 청순가련한 배역을 잘 맡았고, 칼라스는 극적인 감정 표현이 중요한 배역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니까요. 양대 음반사의 톱스타였으니 웬만한 인기 오페라는 모두 녹음해 많은 음반이 남아있는지라, 음반만 보면 두 가수가 서로 겹치며 비교되는 배역이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도 않았던 겁니다. 주력 레퍼토리를 보면, 칼라스와 테발디 중 누가 더 훌륭한 소프라노인지를 두고 논쟁하는 건, 재즈와 발라드 중 어느 쪽이 더 훌륭한 노래 장르냐고 논쟁하는 것을 보는 느낌마저 듭니다.

 

 

하지만 칼라스와 테발디의 팬은 서로 양분되는 성향이 뚜렷했습니다. 서로 같은 배역을 맡아 직접 비교될 일도 거의 없었고, 두 가수는 서로에게 별다른 악감정이 없었습니다만, 많은 팬은 치열하게 대립했지요. 그 영역에서의 1인자로 인정받는 것에 팬들이 예민한 사례는 많았지만, 칼라스와 테발디의 대결 구도에서는 그런 경향이 지나치게 두드러졌습니다. 음반사에서 판촉에 활용하기 위해 부추긴 경향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요.

 

저는 칼라스와 테발디의 대결 구도의 근본에는, '전통적인 해석 vs 파격적인 해석'의 구도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파와 혁신파 카테고리에 이 글을 쓴 것도, 제목에 굳이 '번외편'이라고 쓴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칼라스는 파격적인 재해석을 적극적으로 추구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비부인>의 '어느 갠 날' 아리아입니다. 칼라스가 <나비부인>을 무대에서 공연한 것은 단 세 번 뿐이었지만, 녹음한 음반에서는 칼라스의 재해석이 특히 잘 드러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어느 갠 날'은 결혼한 남자가 3년 동안이나 소식이 끊겼지만, 여주인공이 언젠가는 그이가 돌아올 것이라며 부르는 아리아입니다. 청순가련하고 순진무구한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순진하게 믿으면서, 희망에 차 부르는 노래지요. 하지만 칼라스가 부른 '어느 갠 날'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계속 그이를 믿는다고 말해두려는 모순적인 심정이 드러나는 것 같다"는 평을 듣지요. 그만큼 처절하면서도 강렬하게 부르거든요.

 

칼라스가 부르는 <어느 갠 날>입니다. 자막은 없습니다.

 

 

<어느 갠 날> 이탈리아어 원문과 한글 번역 대역입니다. 클릭하면 새창으로 뜹니다. 번역 출처는 <어느 갠 날> 아리아를 소개한 네이버캐스트입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86&contents_id=2054

 

 

줄거리로 놓고 보면, 칼라스의 노래가 터무니없는 해석은 아닙니다. 실제로도 오페라의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을 버린 상태였고, 3년 동안이나 소식이 끊어졌으면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도 되었지요. 하지만 자신을 믿고 따르는 하녀에게만은,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거예요. 겉으로야 계속 그이를 믿고, 언젠가는 그이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을 하는 본인은 막상 그 말을 어느 정도나 믿고 있는 걸까요?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고, 정말로 믿고 있는 건가요?

 

 

하지만 <나비부인>은 원래 청순가련하고 순진무구한 여주인공을 표현하는 작품이었고, 음악도 거기에 맞춰 작곡되었습니다. 칼라스의 해석은 표준적이고 전형적인 표현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지요. 스스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칼라스는 수많은 오페라 작품을 섭렵하고 서정적인 역할과 격정적인 역할을 모두 해내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지요. 바로 그 때문에 칼라스를 칭송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만, 그 파격적인 해석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칼라스의 목소리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 역시 여기에 한몫합니다. 칼라스의 목소리는 청아하다기보다는 날카로운 쪽에 가까운데, 좋아하는 사람은 칼라스만의 독보적인 강렬함이라고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쇳소리라고 부를 정도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만약 칼라스가 그 목소리로 전통적인 해석을 따라 노래했다면, 노래는 잘 부르는데 목소리가 거칠어서 몰입하기 힘들다는 평도 나왔을 거예요. 웬만한 막귀도 칼라스의 노래와 다른 유명 소프라노의 노래는 판별할 수 있을 겁니다. 노래를 정말 잘 부르는데 목소리가 거칠고 쨍하는 느낌이 들면, 칼라스라고 보면 대강은 맞습니다. 최정상급 소프라노 중 목소리가 그렇게 날카로운 가수는 칼라스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레나타 테발디는 이와 반대로, '전형적인 소프라노'의 클리셰를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한 가수였습니다. 오페라의 여주인공 소프라노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지고지순하게 남주인공을 사랑하고, 설사 남주인공이 자신을 오해하거나 때로는 모욕까지 해도 변함없이 연인을 사랑하는 청순가련한 아가씨? 테발디는 바로 그런 배역에서 빛을 발하는 가수였습니다.

 

칼라스와 달리 테발디는 '화려한 기교'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칼라스는 소프라노가 부를 수 있는 역이라면 전천후로 불렀고, 때로는 메조소프라노 배역까지 맡았을 정도로 넓은 음역대를 소화했지만, 테발디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배역에 주력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칼라스의 강렬함도 없고, 화려하고 찬란한 기교가 있는 것도 아니라, 테발디의 가창을 처음 들으면 유명세에 비해 좀 밋밋하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듣다 보면 맑고 깨끗하고 청순한 가창에 감탄하게 되지만요.

 

 

테발디가 부르는 <어느 갠 날>입니다. 자막은 없습니다. 칼라스가 부른 아리아와 같은 노래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확연히 다르게 부르지요.  테발디의 가창이 푸치니가 의도했던 가창이자, "전통적인 표준" 쪽입니다.

 

 

칼라스와 테발디의 스타일은 판이하고, 겹치는 배역도 거의 없습니다. 직접 비교될 일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팬층은 양분화에 가까울 정도로 뚜렷이 갈렸고, 열성 팬이랍시고 상대방을 깎아내리기에 주력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칼라스에게는 파격적인 재해석으로 일대 돌풍을 일으킨 예술가에게는 으레 그렇듯이, 그 예술가를 칭송한답시고 기존의 방식을 모두 깎아내리는 자칭 열성 팬이 꽤 많았다고 합니다. 이러다보면 그 파격적인 재해석에 별 공감은 못하던 사람이, 자칭 팬의 그런 행태를 보며 그 혁신적인 도전 자체에 반감이 생기는 일도 일어났을 테고, 이런 사람들은 아무래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노래불렀던 테발디 쪽에 쏠리게 되었겠지요.

 

칼라스와 테발디의 팬층이 유난히 라이벌 의식이 강한 것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라이벌 구도는 칼라스나 테발디라는 한 명의 가수에 대한 호오나 우열이 아니라,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공연을 선호하느냐, 아니면 파격적으로 재해석한 공연을 선호하느냐에 기반한 측면도 크다고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