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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대회] 현대 한국의 디아스포라

아리에시아 2025. 6. 30. 23:41

*벌집과 꿀의 리뷰 대회 참여작입니다.

 

 

벌집과 꿀은 디아스포라 단편들을 묶은 단편집같은 책입니다. 좁은 의미의 디아스포라만 생각했다면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을 읽고 좀 당혹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쟁 같은 사건이 직접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런 큰 사건 때문에 사람들이 졸지에 고향이나 고국을 떠나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등의 이유로 단체로 포로로 낯선 곳으로 끌려가는 이야기는 더더욱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주인공 격인 인물들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는 넓은 의미에서는 고향이나 고향처럼 기댈 곳을 잃거나, 그런 곳이 아예 없어서 정처 없이 떠돈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며, 이 책 속의 이야기는 그 넓은 의미의 디아스포라에 잘 들어맞는 내용들이 하나씩 전개됩니다. 역설적인 것은 이 책 속의 인물들에게는 사전적인 의미의 고향이나 고국은 있는데, 바로 그 때문에 하나같이 정서적으로 마음 붙일 고향 같은 곳이 없다는 것이 더욱 뚜렷하게 부각된다는 것입니다. 그 고향 같은 곳은 크게는 소속감이 있는 고국이라 여기는 나라일 수도 있고, 작게는 집이라고 여기는 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 속의 이야기에서는 그 여러 가지 의미가 동시에 중첩되어서 나타나기도 하면서, 디아스포라나 다름없는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처지와 입장이 생생한 심리 묘사와 함께 더욱 뚜렷하고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합니다.

 

벌집과 꿀의 중심 인물들은 디아스포라나 다름없는 기분을 느끼게 되거나, 아예 주변 인물들이 좁은 의미의 디아스포라에 속하는 경우 등의 여러 상황을 겪게 됩니다. 특히 고려인 이야기에서 그런 점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유난히 뚜렷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중심 인물들 중 당사자가 직접 끌려가서 졸지에 고려인이 된 1세대는 전무하지만, 그런 고려인 거주지에서 활동하라고 갑자기 배정받은 장교나, 그런 고려인을 부모로 둔 자녀 등의 인물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과연 직접 끌려간 고려인 1세대는 아니니 고려인 디아스포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을 덜컥 할 수 있을까요? 그 모든 것을 겪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들을 수 있고, 그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때로는 가족 친지이기도 한 상황인데 말입니다.

 

벌집과 꿀의 단편 속의 디아스포라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한국 역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례들입니다. 이 책의 이야기 자체는 픽션이지만, 그런 상황은 실제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으며, 그런 상황을 겪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 심정에서 얼마나 떠밀리는 기분을 느끼면서 정처 없이 마냥 떠도는 처지라고 느끼게 되었을지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입체적이면서도 생생한 심리 묘사와 함께, 어느새 비단 몇몇 기구한 운명의 인물들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울고 웃고 괴로워하며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디아스포라는 직접 고향에서 끌려가듯이 떠나야만 했던 당사자뿐만 아니라 자녀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이자, 부평초같다는 표현조차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처절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라는 것과 함께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깊은 여운을 남기며, 디아스포라가 여전이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이끌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