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직접 규제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흉년이 들면 곡식으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한 경우가 자주 있었지만, 그 이외에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애초에 조선시대에는 이른바 사치스러운 식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이유도 컸겠지요. 심지어 궁중 요리에서도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는 음식은 거의 없고,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요리를 복잡한 공정을 거쳐서 정성 들여 만드는 음식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드물게 조선 시대 나라에서 직접 수시로 규제한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한과인 유밀과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유밀과는 값싸고 부담 없이 구할 수 있는 한과입니다. 재료도 밀가루와 꿀 정도이고, 무늬를 새긴 틀에 찍어서 만들기에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기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면만 본다면, 조선시대에는 현대에는 흔한 유밀과 한과도 규제할 정도로 가난하고 힘들었던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조금만 손본다면, 대놓고 비웃는 글 정도는 금세 써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유밀과의 재료는 조선 시대 기준으로는 하나같이 귀한 것이었습니다. 밀가루, 꿀, 조청, 기름. 튀김 요리가 흔한 현대에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기름은 근대까지만 해도 많이 귀했고, 튀김 요리가 보급된 것도 얼마 안 됩니다.
그리고 틀에 찍어서 무늬를 새긴 과자를 만든다는 것도, 조선시대에는 손으로 빚기만 하면 만들 수 없고 다른 도구가 더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기에, 조선 시대 기준으로는 귀해질 요소였습니다. 현대에는 공장제 대량생산에 적합한 특징으로 여겨지게 되었지만요. 그래서 손으로 빚어서 만드는 음식보다 값이 싸지게 되지요.
조선 시대에, 현대에는 흔하고 값싼 유밀과를 이례적으로 규제했던 것은 조선시대가 흔한 과자도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조선 시대 기술과 상황에서는 아주 귀한 과자였고, 외국산 밀가루를 마음껏 수입하고 기름도 대량생산할 수 있으며, 공장에서 과자를 만드는 시대에 적합한 대량생산 기술을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비단 유밀과뿐만이 아니라, 현대의 기준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행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생각 > 블로그 외 주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들어진 전통 2-빅토리아 여왕과 순백색 웨딩드레스 (0) | 2022.03.05 |
---|---|
만들어진 전통 1 -스코틀랜드의 타탄 체크 무늬 (0) | 2022.02.05 |
서자와 사생아의 차이와 번역 이야기 (0) | 2021.12.03 |
창의적인 설정과 짜임새에 대한 생각-오르치와 스칼렛 핌퍼넬, 구석의 노인 (0) | 2020.09.05 |
창의적인 설정과 짜임새 이야기-로베르 드 보롱과 성배 (0) | 2020.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