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든 예술/역사를 상기시킨 예술

현장 법사의 구법여행과 오승은의 <서유기>

아리에시아 2016. 5. 7. 11:58

645년은 당나라에서는 중국 불교 역사를 통틀어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손꼽히는 해입니다. 거의 20년 전인 627년 혈혈단신으로 인도로 여행을 떠났던 승려 현장이 당나라로 귀국한 것입니다.

 

현장의 구법여행은 파란만장하다는 표현이 오히려 부족할 정도로, 고난스럽기 그지없는 길이었습니다. 당시 당나라에서는 개인, 특히 승려가 당나라 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를 하고 지원을 받기는커녕 혈혈단신 홀몸으로 몰래 여행하며 사막을 넘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장은 끝내 도착하는 데 성공했고, 인도에서 수많은 인도 불교 경전을 들고 당나라로 돌아갑니다. 당나라에 귀국한 후, 현장은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이 가져온 인도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데 힘썼습니다. 현장이 가져온 인도의 경전과 현장이 한문으로 번역한 한역 경전은 중국 불교 역사에서 큰 의의를 지니는데, 중국 불교가 본격적으로 경전 연구를 시작하고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현장을 그린 후대의 그림입니다.

 

 

현장의 구법 여행은 중국 불교, 나아가 동양 불교의 초석을 쌓은 중요한 분기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현장이라는 이름을 알 일이 딱히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사에서 최초로 불교를 가져온 사람이 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아도와 순도라는 것이, 한국사 관련 시험을 항목에서나 이름만 언급되는 것처럼요.

 

하지만 오늘날 현장이라는 스님이 불교 경전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떠났다는 이야기는, 불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현장의 구법 여행 후 천년 가까이 지난 16세기에, 현장의 구법 여행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 만들어졌고, 이 소설이 널리 알려진 덕입니다. 바로 중국의 대표적인 고전소설로 꼽히는 <서유기>입니다.

 

 

<서유기>의 큰 줄거리는 원숭이 요괴 손오공, 돼지 요괴 저팔계, 모래 요괴 사오정이 당나라 승려인 삼장 법사를 호위하여 서역의 천축국으로 가는 도중에 이런저런 사건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서유기라는 제목 자체가 서쪽으로 여행한다는 뜻을 담고 있지요. 다양한 요괴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서역으로 가는 삼장 법사 일행을 습격하지만, 손오공 일행은 요괴를 번번이 격퇴하는 데 성공하면서 여행을 계속하는 이야기입니다. 결말부에서 삼장 일행은 마침내 서역에 무사히 당도하는 데 성공하고, 서역의 경전을 얻어 당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갖가지 도술을 부릴 수 있고 재주 많은 원숭이인 손오공, 손오공에게 번번이 딴지를 걸어 툭하면 일을 꼬이게 만들면서도 중요할 때 할 일은 하는 저팔계의 캐릭터는 <서유기>를 읽어본 적 없는 사람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합니다. 그리고 이 일행이 호위하는 '삼장법사'가 바로 실존인물 현장을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입니다. 삼장법사 일행이 '서역'으로 향하여 목표하는 도착지인 '천축'은 인도를 뜻하고요. 삼장법사는 본래 당나라 시기에 불교 경전을 숙달한 뒤 더 깊은 공부를 위해 천축국으로 가고자 하는, 일종의 유학생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이 독보적으로 유명해진데다, <서유기>를 통해 삼장법사를 알게 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에 힘입어, 숫제 현장만의 별칭처럼 통용되게 됩니다.

 

 

<서유기>는 고전소설에 대한 흔한 편견과 달리, 오늘날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수많은 요괴가 다종다양한 흉계를 꾸미고, 손오공 일행이 갖가지 기발한 방법과 다양한 도술을 동원해 그 음모를 깨부수는 장면은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줍니다.

 

<서유기>에는 요괴나 괴이한 장소 등 갖가지 난관이 등장하는데, 중국 민간 설화 등에서 존재하던 모티브를 변주한 것이 많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서유기>에는 불타는 산인 화염산, 모래가 흐르는 강인 유사하가 등장하는데, 이 두 장소는 각각 화산과 사막의 이미지에서 따왔다는 해석이 정설입니다. 또한 서유기에 등장하는 요괴나 괴물의 상당수는 도교 및 중국 설화에 등장하는 괴이한 존재에서 따온 것인데, 그냥 읽어도 재미있지만 관련 설화를 알고 읽으면 재미가 배가됩니다. 기존 이야기의 기초적인 설정은 가져오면서, <서유기>의 세계에 맞게 변주하며 캐릭터성과 활동력을 불어넣는 센스가 돋보이지요. 역사 이야기는 딱딱하다거나, 옛날 설화는 고리타분해서 별 재미가 없다거나, 재해석을 하려면 원판을 찾아볼 수 없게 파격적으로 뒤틀어야만 재미가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막연히 생각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은데, <서유기>는 마치 절대 그렇지 않다고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오래된" 소재를 가져와 재미나고 방대하게 엮어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