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는 그림 그리기에 한참 몰두하던 시절, 이웃과 친구들의 초상화도 많이 그렸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 바로 1890년에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입니다. 고흐가 자살하기 직전까지 자신을 돌봐주었던 의사인 가셰 박사를 그린 초상화입니다. 그림 자체로보다는, 1990년 경매장에서 8천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는 것으로 훨씬 더 유명하지만요. 2004년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이 1억 달러 넘는 가격에 낙찰되기 전까지, 가장 비싼 경매가격을 기록한 미술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가셰 박사는 이 초상화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습니다. 고흐가 초상화를 그려 준 지인들 중에는, 고흐의 초상화에 별 감흥이 없는 경우가 많기는 했습니다. 사진 같은 엄정한 사실성을 추구한 보통 초상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자길 그린답시고 괴상한 모양을 요상하게 그린 것으로 비치기 십상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고흐의 작품을 선물받은 이웃 중에는, 선물이니 일단 면전에서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닭장의 구멍을 메우는 용도로 그 작품을 사용해버린 사례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가셰 박사가 이 초상화를 탐탁치 않게 여긴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셰 박사는 고흐가 초상화를 그려준다는 말에 <지누 부인의 초상> 같은 분위기를 원했는데, 완성된 초상화는 너무 정신없고 어지러워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고흐의 <지누 부인의 초상>입니다. 가셰 박사는 바로 이런 분위기의 초상화를 기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흐는 가세 박사의 소망을 받아들여, <가셰 박사의 초상>을 한 점 더 그립니다.
소품이 대폭 줄어든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비슷하지만, 붓터치와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지요. 가셰 박사는 이 두 번째 초상화를 마음에 들어했고, 고이 간직합니다.
유명하기는 첫 번째 초상화가 훨씬 유명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림 자체로서가 아니라 십수년간 '가장 비싼 그림' 타이틀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더욱 유명한데다가, 두 번째 초상화도 나름대로 좋은 평을 받고 있습니다. 첫번째 초상보다 두번째 초상의 완성도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경우도 많고요. 두 번째 초상이 확연히 더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상황은 아닌지라, 이것을 '개선이 아닌 개악'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전화위복' 사례로 보아야할지는 애매한 일이겠지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가셰 박사의 취향이 고흐의 작품을 한 점 더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어줬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후대인은 고흐의 초상화를 한 점 더 감상할 수 있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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