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당한 작품과 선택된 작품/전화위복?

번외편-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

아리에시아 2015. 8. 7. 13:23

제목에 번외편이라고 쓴 것은, 정황증거로 미루어 보아 의뢰자가 첫번째 그림을 거부했을 공산이 크지만, 그것을 입증하는 명확한 서류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연성 높은 추정을 할 수 있을 뿐, 공식적인 확인을 할 수는 없는 상태지요.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로 손꼽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모나리자>를 비롯해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암굴의 성모>는 그 중에서도 오늘날 널리 알려진 작품입니다. 어쩌면 <모나리자> 다음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암굴의 성모>를 두 점 그렸습니다. 이 두 점의 작품은 같은 의뢰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무염시태 형제회에서 산 프란체스코 데 그란데 성당에 안치할 작품을 의뢰한 것이지요. 그런데 첫번째 그림을 그린 후, 첫번째 그림은 원래 예정되었던 곳에 안치되지 않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얼마 후 두 번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레오나르도는 두 번째 <암굴의 성모>를 그리는 데 10년이 넘는 세월을 소요했으나, 무염시태 형제회나 산 프란체스코 데 그란데 성당에서는 10년이 넘는 제작기간에도 불구하고 첫번째 그림을 가져오는 대신 두 번째 그림이 완성되기를 기다렸지요.

 

첫번째 <암굴의 성모>가 완성되었을 때, 의뢰자나 성당 측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입증하는 당시의 공식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첫번째 <암굴의 성모>는 얼마 후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는데, 당시 정황상 강탈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시에는 전쟁 등 남의 재산을 약탈할 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이런 정황증거로 미루어 보면, 성당에서 첫번째 <암굴의 성모>를 거부했고, 이후에도 이 작품을 성당으로 가져오기 위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두 번째 <암굴의 성모>를 10년 넘게 그리고 있을 동안에도, 성당 내에서는 이미 완성된 첫번째 작품을 들여오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니, 성당 측에서 첫번째 그림을 자의적으로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것이지요. 이미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돈을 주고 산 작품이면 돈을 주고 팔 수도 있는 법인데, 그렇게 하지도 않은 겁니다. 확실한 것은 첫번째 <암굴의 성모>가 완성된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두 번째 <암굴의 성모>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첫번째 그림은 성당에서 볼 수 없었다는 것뿐입니다. 성당에 걸린 적이 있기나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지요.

 

상황을 더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것은, 첫번째 그림과 두번째 그림은 마치 복제화라도 되는 것처럼 거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의뢰자가 주문한 작품을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새로 그리라고 한 경우에는, 작품의 구도나 분위기 등이 대폭 바뀌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암굴의 성모> 두 버전은 구도가 거의 비슷해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첫번째로 그린 <암굴의 성모>입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제작시기는 1483년-1486년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두 번째로 그린 <암굴의 성모>입니다.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제작시기는 1495년-1508년입니다.

 

 

두 그림을 나란히 놓고 봐도, 다른 점이 거의 없지요. 등장인물과 구도는 판박이처럼 흡사하며, 천사를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들은 동작도 거의 똑같습니다. 두 아기에게 후광과 십자가가 추가된 것, 색감이 조금 다른 것, 전경의 식물 모습이 달라진 것, 천사의 붉은 망토가 사라지고 손동작이 바뀐 것 정도가 차이점이지요. 당시 관념에 비추어 보면, 첫번째 그림에 신학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를 거의 분간이 가지 않게 그린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파격적인 그림이었고, 성경에는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가 아기 시절에 서로 만났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으며, 성모가 동굴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도 없지요. <암굴의 성모>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파격적인 도상을 취한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었다고 보기에는, 두 번째 그림에서도 이런 부분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바뀐 부분은 거의 없고, 후광 및 십자가와 천사의 손동작과 붉은 망토자락 정도를 제외하면, 바뀐 곳도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부분들이었지요.

 

두 번째 작품에서는 후광과 십자가가 추가되기는 했는데, 이게 첫번째 작품이 거부된 원인이라고 보기에도 힘듭니다. 이 정도는 덧그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니까요. 실제로 두번째 <암굴의 성모>에서도, 후광과 십자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림을 그릴 때 그린 게 아니라, 나중에 덧그렸다고 추정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성당에서는 첫번째 <암굴의 성모>를 없는 것처럼 취급하며, 이미 완성된 작품이 있는 상황에서 거의 비슷하게 생긴 새로운 작품이 완성되기를 10년 이상이나 기다려 준 걸까요?

 

공식적으로 첫번째 작품의 인수를 거부한 기록도 없고, 무엇 때문에 거부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고, 그래놓고 막상 새로 그린 그림도 첫번째 작품과 거의 흡사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관련 공식 문서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이 알쏭달쏭한 두 번째 주문 덕에, 오늘날 우리에게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가 두 점 남겨졌다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