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장인가수 Die Meistersinger von Nurnberg>는 바그너 작품 중 유일한 희극 오페라입니다.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제목부터 정리해야 할 듯합니다. 이 오페라의 원제 원제를 그대로 옮기면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마이스터징어라는 호칭의 번역이 제각각입니다. 본래 한국어에는 없는 단어라서 번역어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명가수로 번역되기도 하고, 장인가수로 번역되기도 하며, 아예 마이스터징어라는 독일어 표기를 음차해서 쓰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 작품의 번역제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뉘른베르크의 장인가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크게 세 가지가 혼용되어 있습니다.
마이스터징어라는 단어를 곧이곧대로 번역하면, '노래의 마이스터'쯤 됩니다. 이 마이스터는 우리가 장인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하는 그 마이스터라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명가수라는 번역은 마이스터징어를 나름대로 의역한 것이고, 장인가수라는 번역은 직역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적절한 의역은 문화적 간극을 뛰어넘어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만, 이 경우에 '명가수'란 의역이 너무 심한 경우에 속합니다. 이 작품에서의 마이스터징어란 노래를 잘 부른다고 노래의 장인으로 선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술로 장인 칭호를 받은 사람 중에서 노래 잘 하는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거든요.
2012년 5월 8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바그너 갈라 콘서트 중<뉘른베르크의 장인가수>의 주요 장면을 공연한 대목입니다. 한글 자막이 달려있습니다. 갈라 콘서트라서, 무대공연과 달리 별도의 무대장치나 의상 없이 정장을 입고 노래만 부릅니다.
<뉘른베르크의 장인가수>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주인공 발터 폰 슈톨칭은 우연히 여주인공 에바를 보고 반하게 되는데, 에바의 하녀 막달레나의 말에 따르면 에바의 아버님은 다가오는 노래 경연의 우승자와 에바를 결혼시킨다고 공표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발터는 그 노래경연에 나가서 우승하겠다는 포부를 키우고, 노래 경연에 나갈 준비를 하지요. 그런데 발터는 좋게 말하면 의욕이 넘쳐서 스스로 오랫동안 연습해온 신참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식으로 뭘 배운 적도 없으면서 의욕만 넘치는 캐릭터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노래연습을 하기는 했는데, 당시 통용되던 노래 규칙과는 완전히 다른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심사위원들의 빈축을 사며, 그 중에서도 베크메서라는 심사위원은 매서운 수준의 혹평을 퍼붓습니다. 심사위원 중 발터의 노래를 호평한 사람은 오직 한 명, 자애로운 어르신으로 정평이 난 구두 장인이나 최고의 장인가수로 여겨지던 한스 작스뿐이었습니다. 한스 작스는 발터의 노래를 두고, 요즘 표현으로 옮기자면 진정성 있고 신선한 노래라면서 좋은 평을 내렸지요.
발터는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노래 경연에 나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에바와 조금씩 사랑을 키워갑니다. 그리고 한스 작스는 에바의 마음을 눈치채고, 음으로 양으로 발터를 돕기로 합니다. 발터에게 사실상 음악 교습을 해 주는가 하면, 발터가 작곡한 노래를 봐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발터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베크메서가 그 노래를 적은 종이를 보고는 한스 작스가 작곡한 노래인 줄 알고 노래 경연에 들고 나가겠다고 합니다. 한스 작스는 그러라고 승낙을 하는데, 베크메서는 노래 경연에서 그 시로 노래를 부르지만 망신을 당하고 맙니다. 기존의 노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작곡한 노래를 기존의 규칙대로 부르려다 보니, 삑사리가 난 것처럼 묘사되지요. 그러자 발터는 그 노래를 자신이 작곡한 것이라고 밝히고, 멋지게 불러냅니다. 청중들은 그 노래에 감탄하고, 발터는 새로운 장인가수로 인정받으며, 에바와 커플이 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맺습니다.
<뉘른베르크의 명인가수>는 중세 길드 문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길드는 중세 시대 기술자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장인-숙련공-도제의 3위계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도제와 숙련공 기간 동안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고, 이 과정을 완수해 장인으로 인정받으면, 길드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할 자격을 부여받게 됩니다.
길드는 독점적인 조직으로, 한 도시에서 길드의 역할을 길드 밖의 사람이 수행하지는 않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뉘른베르크의 명인가수>에서 마음씨 따뜻한 멘토로 등장하는 한스 작스는 구두를 짓는 제화 길드의 장인인데, 작품 속에서는 이 마을 사람들은 한스 작스나 한스 작스가 속한 제화 길드에 속한 구두장인에게서만 구두를 만드는 식이지요. 길드는 상태가 지극히 안정적인 시스템이었는데,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변화가 없는 제도였습니다. 선배 장인들의 궤적을 그대로 따르자는 기치로 현장유지만을 목표로 하는 곳이었지요. 변화가 없었기에, 개선되지도 않고, 악화되지도 않는 제도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길드는 오늘날 산업으로 분류되는 수많은 분야들을 각각 담당했는데, 길드를 대표해 축제나 행사 등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뉘른베르크의 장인가수>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노래 경연에서, 이런 길드 축제가 묘사되고 있지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한 <뉘른베르크의 장인가수>의 노래경연 장면 사진입니다. 무대 뒤에 여러 휘장이 깃대에 매달려 있는데, 이 휘장들은 길드의 문장을 새긴 길드의 상징입니다. 3막의 노래 경연 장면에서는, 여러 길드에서 이 길드 휘장을 들고 행진하며 무대에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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