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역사의 만남/오페라 속의 과학사

하이든의 <달세계>와 달에 대한 18세기의 대중인식

아리에시아 2015. 6. 6. 11:58

요제프 하이든은 1777년 <달 세계 Il Mondo Della Luna>라는 오페라를 발표합니다. 제목을 보면 달을 무대로 하거나 달에 여행이라도 하는 내용일 거라고 짐작하기 쉬운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달에 여행간다고 그럴듯하게 꾸며서, 한바탕 골탕먹이는 희극적인 오페라입니다.

 

주인공 에클리티코는 특수 장치를 한 망원경을 만들었습니다. 망원경 끝에 사람 모양의 형상을 설치한 기계가 찍히게 해서,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달이며 달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사람들을 속이는 장치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근처의 부오나페데라는 심술쟁이 영감에게 장치를 보여줄 계획을 꾸밉니다. 부오나페데에게는 클라리체와 플리미니아라는 두 딸이 있는데, 에클리티코와 에클리티코의 친구 에르네스토는 각각 클라리체와 플리미니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에클리티코는 속임수 망원경을 부오나페데에게 보여주고, 부오나페데는 자신이 망원경을 통해 정말로 달에 사람이 살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고 믿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만든 장치를 통해, 달에 갈 수 있다는 말도 하지요. 부오나페데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에클리티코가 달에 가기 위해 필요한 약이라면서 건네준 약을 의심 없이 마십니다. 그런데 그 약은 사실 수면제였고, 에클리티코 일행은 부오나페데가 잠든 틈에 미리 달세계처럼 꾸며둔 정원으로 옮긴 후, 달에 도착했다고 요란하게 이야기해줍니다.

 

에클리티코의 친구 에르네스토는 달 세계의 군주로 변장하여, 부오나페데를 따뜻하게 환대합니다. 그리고 부오나페데의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지요. 부오나페데는 딸이 달을 다스리는 왕비가 된다는 데 기뻐하며, 청혼을 승낙합니다. 달에 데려와준 것에 감사하다며, 에클리티코가 클라리체와 결혼하는 것도 허락하지요.

 

곧이어 부오나페데는 에클리티코 일행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있는 곳은 달이 아니라 정원이며, 달 세계의 군주랍시고 나타난 사람은 에클리티코의 친구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하지만 이 시대 오페라 부파가 언제나 그랬듯이, 마지막에 어영부영 용서하고 해피엔딩 합창을 부르면서 끝납니다.

 

 

2009년 빈에서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지휘로 공연된 <달세계> 공연 영상입니다. 영어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유니텔 클래시카 Unitel Classica 채널에서 한국어 자막을 붙여서 방영된 적 있는 공연이기도 합니다.

에클리티코 역에 베르나르드 리히터, 에르네스토 역에 비비카 주노, 부오나페데 역에 디트리히 헨셸, 클라리체 역에 크리스티나 랜드셰이머, 플라미니아 역에 아냐-니나 바만, 리제타 역에 마이테 보몬트가 출연합니다.

 

 

달에 대해 최소한의 과학 상식만 있어도, 절대 속지 않을 허술한 이야기지요. 아무리 코미디 작품이라지만, 이렇게 허술한 속임수에 넘어가다니요. 무슨 열기구 같은 걸 타고 사람이 달에 갈 수 있고, 달에 사람이 살고 있고, 달에 사람이 호흡할 수 있는 공기가 있다고 믿다니요? 달 세계 사람들과 지구 사람이 단번에 말이 통한다는 것도 어이없는데, 곧바로 믿네요.

 

하지만 이 작품이 공연된 18세기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비쳤을 것입니다. 1777년은 열기구를 타고 달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던 시기였거든요. 이것은 과학사라기보다, 과학대중상식의 역사에 더 가까운 이야기겠지만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달을 망원경으로 관찰하기 이전, 사람들은 달에 대해 갖가지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특히 달에 또다른 세계가 있다거나, 사람이 달에 여행한다는 이야기는 많은 작품에서 등장했지요.

 

돈키호테가 즐겨 읽은 1532년작 기사도 서사시 <광란의 오를란도> http://blog.daum.net/ariesia/59 에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아스톨포가 마법 마차를 타고 달에 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분의 발상은 독특하고 탁월해서, 이후 여러 작품에 영향을 주었지요. 그리스 신화의 페가수스처럼, 히포그리프라는 신기한 동물을 타고 달에 갔다는 버전도 있고요.

 

아스톨포가 달에 가는 모습을 그린 19세기의 판화입니다. 귀스타브 도레의 작품입니다.

 

제목 <광란의 오를란도>는 표현 그대로 미쳐버린 오를란도를 뜻합니다. 훌륭하고 강인한 기사 오를란도가 실연당해서 미쳐버리자, 동료인 아스톨포는 오를란도를 돕기 위해 달에 갑니다. 아스톨포는 평소에는 경박하기로 이름난 기사지만, 동료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일에는 몸을 아끼지 않는 위인이었지요. 아스톨포가 달에 가는 장면은 <광란의 오를란도> 34곡의 68연, 69연에 해당하며, 70연~74연에 걸쳐 아스톨포가 달나라를 구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세계의 달에는 땅 위에서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들이 모여 있는데, 아스톨포는 달에 버려진 것 중에서 오를란도의 제정신을 찾아서 땅으로 가져옵니다. 아스톨포가 오를란도에게 제정신을 찾아다주자, 오를란도의 광증은 사라졌지요. 여기에는 재미난 뒷이야기도 있는데, 아스톨포는 달에서 자신의 이성도 찾습니다. 그래서 달에서의 아스톨포는 갑자기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모습으로 일변하지요. 그런데 땅 위에 도착하자마자, 오를란도의 제정신은 남아 있는데, 아스톨포의 이성은 사라져버렸다네요. 그래서 아스톨포는 다시 예전처럼 가벼운 성격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 작품에서 달은 신비로운 공간이며, 땅에서 살던 사람이 달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지요. 예를 들면 72연에는 달에서 '도시들도 있고, 그들의 마을도 있'다는 묘사와, '넓고 한적한 숲들도 있었으며/요정들이 짐승들을 뒤쫓고 있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를 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상상한 것이 실제와는 다른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1610년을 전후한 시기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달을 망원경으로 관찰한 뒤에도, 저런 이야기는 여전히 널리 퍼졌습니다. 달이 구멍이 움푹 패인 돌덩어리라는 것보다는 훨씬 다채롭고 매력적인 이야기였으니, 이해 안 가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달을 저렇게 묘사한 작품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달이 정말로 저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열기구를 타고 달로 갈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경우도 많았지요.

 

 1780년경의 판화 작품으로, 훔구피에 기사와 드굴 후작이 열기구를 타고 달 여행을 시도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달, 낭만의 달, 광가의 달>에도 소개된 작품인데, 이 책에 실린 흑백 버전과 제가 올린 컬러 버전이 나란히 현존합니다.

 

 

하이든의 <달 세계>가 초연된 지 반 세기도 넘게 지난 1835년에는, 달에 사람이 사는 것을 발견했다는 신문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1835년, 미국의 <더 선>지는 유명한 천문학자 허셜 경이 달에 사람이 사는 모습을 관측했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허셜 경의 이름은 신뢰성을 높여주는 증명서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허셜 경은 자신의 이름이 이런 기사에 나왔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고, 허셜 경에게 아무런 언질 없이 신문기사가 사칭해서 날조한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믿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고 합니다. 달에는 날개가 달린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어 살고 있고, 지구에서 그것을 관찰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는 거지요. 하이든의 <달 세계>가 초연된 지 반 세기 넘게 지났을 때에도, 달에 또다른 세계가 존재하며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말을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 해프닝입니다.

 

1835년, 허셜 경의 이름을 날조해 '달에 사람이 산다는 것이 관측되었다'라는 특집기사를 실었던 ' 더 선' 지의 당시 삽화입니다. 6개 연작기사 중 4번째 기사에 게재된 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