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체크의 <마크로풀로스 사건>은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 창시했던 작가인 카렐 차페크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입니다. 체코에는 19세기 후반 이래 오페라 <루살카>처럼 체코의 민족주의를 강하게 의식한 체코어 작품이 여럿 나왔는데, http://blog.daum.net/ariesia/111 20세기 초반 문학가에서는 카렐 차페크가, 오페라계에서는 야나체크가 세계적 고전 반열에 오른 작품으로 체코어로 써내서 예술계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차페크의 작품을 원작으로, 야나체크가 작곡한 오페라가 바로 <마크로풀로스 사건>인 것이지요.
<마크로풀로스 사건>은 한동안 뜬금없고 영문 모를 대화가 잔뜩 나오다가, 막판에 비밀이 밝혀지면서 두서없어 보이던 사건과 대사들의 의미가 밝혀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오페라의 작중 배경은 1922년으로, 100년 동안 결론이 나지 않았던 재산 상속 소송이 다시 진행된다면서 오페라의 막이 오릅니다. 난데없이 인기 오페라 가수인 에밀리아 마르티가 이 소송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서, 소송 관련자가 에밀리아에게 해설해주는 형식으로 소송의 내용이 설명됩니다. 100여년 전 프루스 남작이라는 귀족이 죽은 후, 갑자기 그레고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프루스 남작이 생전에 자신에게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레고르의 주장을 입증할 문서 등의 서류 증거는 없었고, 소송이 제기되었으며, 이 소송은 100년이 지나도록 판결나지 않았기에 이번에 다시 재판을 재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밀리아 마르티는 이 말을 듣자, 그레고는 프루스 남작이 오페라 가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이며, 유언장 및 관련 서류가 이러저러한 장소에 있을 거라는 말까지 합니다. 에밀리아의 이야기는 재판 관련인 전원에게 금시초문인 이야기인데, 놀랍게도 사실로 밝혀집니다. 에밀리아는 100년 전에 일어났던 일과, 관련 서류가 있는 위치까지 알고 있었으며, 그 서류의 내용까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밀리아는 프루스 남작의 후손에게, 남작 저택의 특정 장소에 봉투에 밀봉된 편지가 있을 거라면서, 그 편지를 자신에게 가져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편지 장면 직후, 재판이 재개됩니다. 그런데 재판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나왔으니, 에밀리아가 가르쳐준 장소에 100년 전 유언장 및 관련 서류가 발견되기는 했는데, 그 서류 중에 프루스 남작과의 사이에서 그레고르를 낳은 오페라 가수가 썼다는 문서가 있으며, 100년 전 사람인 그 가수의 필체와 현대인인 에밀리아의 필체가 똑같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새롭게 발견되고 제출된 관련 서류 중에는 100년 전 인물인 그 오페가 가수가 1836년에 작성했다는 문서가 있었는데, 감정 결과 1836년 이후에 작성된 문서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재판 관련인들은 에밀리아가 그 많은 서류들을 위조했다고 의심하는데, 에밀리아는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에밀리아의 말에 따르면, 100년 전 프루스 남작의 아이를 낳은 오페라 가수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1836년 문서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이 없습니다만, 정황상 바로 얼마 전에 100년 전 인물 명의의 서류를 자필로 작성했던 듯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루돌프 2세 아래에서 연금술을 연구했던 마크로풀로스라는 사람의 딸로, 무려 300여년 전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합니다. 마크로풀로스는 불로장생약을 루돌프 황제에게 바쳤는데, 루돌프 황제는 먼저 마크로풀로스의 딸에게 그 약을 시험해보라고 명했고, 에밀리아가 바로 그 시험 대상으로 선택되어 약을 먹었습니다. 에밀리아는 약을 먹은 직후 혼절했고, 루돌프 2세 황제는 마크로풀로스를 가짜 약을 바친 사기꾼으로 처벌하는데, 그 약은 진짜였습니다. 일 주일 동안 꼬박 혼절했다가 깨어난 에밀리아는, 그 뒤 300년 동안 살아왔으니까요. 그리고 에밀리아는 100년 전 시간대에서 프루스 남작을 만나 그의 아이를 낳았고, 그렇기에 프루스 남작의 유언 및 관련 서류에 대해서 그토록 소상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프루스 남작의 후손을 통해 남작 저택에서 가져오게 한 편지에는, 자신이 바로 자신이 먹었던 불로장상 약의 비법이 적혀 있었지요. 그 약의 효력은 300년이기에, 더 살려고 했다면 이제 재처방을 받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밀리아는 그 처방을 다시 시행하지 않으려 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 처방을 보겠다고 나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들 거부하는 분위기지요. 그리고 모든 장면을 지켜본 조연인 크리스타가 처방을 적은 서류를 불에 태우고, 그 광경을 보고 에밀리아 마르티가 쓰러지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오페라가 끝납니다.
소프라노 안야 실리아가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서 <마크로풀로스 사건>의 마지막 장면을 부르는 영상입니다. 자막은 없습니다.
<마크로풀로스 사건> 피날레 장면의 체코어-한국어 대역 대본입니다. 클릭하면 새창으로 뜹니다. 번역 출처는 고클래식 대본자료실입니다.
<마크로풀로스 사건>은 온전히 허구의 이야기입니다만, 배경이 되는 시대의 역사적 요소 및 사회문화적 요소는 은근히 폭넓고 정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초반에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 쪽의 성을 따랐으며, 출생증명서도 모친이 작성하게 되어 있다는데, 이 서류가 작중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설정은, 실제 역사적 사회상에도 부합하며, 그 시대에는 정말로 그게 관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제외하면 별다른 부연설명이 없기 때문에, 무심히 지나치기 쉽지요. 예를 들어 마크로풀로스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2세 밑에서 연금술 연구를 했다는데, 이 시기는 설정상 16세기 후반입니다. 중세를 훨씬 지나, 연금술이 사실상 사장되고 근대 과학이 태동하던 시기에 불로장생약 연금술 연구를 했다는 것이기에, 좀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용주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라는 설정 덕에, 훨씬 그럴싸한 설정이 되었습니다. 루돌프 2세는 연금술과 점성술 등에 천착했고, 나라일은 뒷전으로 한 채 막대한 돈을 들여 신기한 물건을 수집하거나 연금술 등의 연구에 쏟아부었던 인물입니다. 오페라에서는 이런 인물평이 딱히 언급되지 않지만요.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보니,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대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밀리아가 제출한 서류 중에는 1836년에 썼다는 문서가 있었는데, 조사 결과 이 문서는 알리자린 잉크로 쓰여졌기에 1836년 이후에 작성된 것이라고 밝혀지고, 이것이 에멜리아를 의심하는 계기 중의 하나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오페라에서는 알리자린 잉크로 쓰여졌으니 그 문서가 가짜라는 대사만 나오고,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문서가 1836년 작성된 게 아니라는 게 중요하지 알리자린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알리자린 잉크로 썼다는 것이 왜 작성시기가 1836년 이후라는 증거가 되는지조차 설명하는 대사가 없습니다. 알리자린에 대해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해당 장면을 감상하면 어떤 느낌일지, 걱정스러운 기분이 될 정도로요. 이 대사의 앞뒤 상황 및 주변 정황 등으로 추측하건대, 합성염료 알리자린을 일컫는 것일 겁니다.
알리자린은 화학연구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발명품입니다. 천연염색재료 중 최초로 인공적으로 화학 합성하는 데 성공한 염료이지요. 최초의 인공합성염료는 1859년 윌리엄 헨리 퍼킨이 합성에 성공한 모브입니다. 모브는 진한 보라색 염료로서, 당시에는 가장 염색비용이 비쌌던 자줏빛을 싼 값에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지요. 유럽 문화권에서 보라색 혹은 자줏빛 염색은 바다달팽이에게서 채취한 염료로만 가능했는데, 염료 채취 방법이 너무나도 까다롭고 수량도 적었기에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개선장군과 황제만이 보라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지요. 가장 비싼 색이 최초로 인공합성되어 대량생산된 염료 색깔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지만 꽤 역설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역사상에 이름을 남긴 합성염료 중 두 번째로 발명된 염료가 바로 알리자린입니다. 알리자린의 화학식은 C14H8O4로서, 붉은 색을 내는 염료입니다. 전통적 염색방법으로는 꼭두서니에서 채취한 염료로 붉은 물을 들였는데, 이 꼭두서니 염료와 완전히 동일한 염료를 화학적으로 합성해낸 것입니다. 1869년의 일이었지요. 그렇기에 오페라 <마크로풀로스 사건>에서, 1836년에 쓰여졌다는 글이 알리자린 잉크로 작성되었다는 것은, 그 문서가 가짜라고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된 것입니다. 1869년에 처음 개발된 잉크를, 1836년에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알리자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두서없고 이해도 안 가고 영문 모를 장면일 겁니다. 화학 강의를 원하는 건 아닙니다만, 1869년에 개발된 잉크라는 대사 한 줄만 더 넣었거나, 최소한 1836년 이후에 개발된 염료라는 것 정도는 언급하는 것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알리자린의 고리구조입니다. 꼭두서니 붉은 염료와 온전히 동일한 구조지요. 알리자린은 천연 염료를 화학적으로 동일하게 구현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그리고 기술이 진보하면서, 20세기에는 천연염료보다 훨씬 다채롭고 화려한 합성염료의 시대가 열리지요.
알리자린 염료의 색상입니다.
붉은빛의 천연 염색 염료를 채취하던 꼭두서니의 모습을 묘사한 세밀화입니다. 1897년 작품입니다. 꼭두서니는 널리 보급되고 인기가 많던 염료였지만, 알리자린이 합성되자마자 꼭두서니 염료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곤충기>로 유명한 장 앙리 파브르도 한때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꼭두서니 염료 개량 연구에 뛰어들었다가, 알리자린이 합성된 이후 오히려 빚만 생겨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꼭두서니에서 붉은 염료를 채취할 수 있다는 것조차 거의 망각되었을 정도로, 온전히 잊혀진 천연 염료입니다. 그리고 꼭두서니를 필두로, 수많은 천연염색사업이 알리자린 이후 다채로운 색채의 합성염료가 잇달아 개발되면서 줄줄이 비슷한 길을 걷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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