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1789년 오페라 <코지 판 투테>는 남자들이 군대에 가게 되었다고 거짓말해 연인들과 헤어지게 된 척 한 뒤, 외국인으로 변장해 연인을 유혹해보려는 이야기입니다. 페란도와 굴리엘모는 친한 친구로서, 도라벨라와 피오르딜리지 자매와 각각 결혼을 약속한 상황으로, 서로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인 알폰소가 여자들에게는 지조가 없다고 말하자, 자기 애인들만은 그렇지 않다면서, 외국인으로 변장해 유혹해도 도라벨라와 피오르딜리지는 절대 '다른 남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기를 한 것입니다.
군대에 가게 되었다고 한참 슬픈 이별을 한 직후, 페란도와 굴리엘모는 외국인으로 변장해 나타나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는 약혼자와 헤어져 슬퍼하는 자신들에게 구애하는 것은 다시 없는 모욕이라면서, 분노하며 쫓아냅니다. 외국 군인으로 변장한 페란도와 굴리엘모는 겉으로는 상심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들의 애인이 지조를 지킨다며 뿌듯해하고 있지요. 그러자 알폰소는 내기의 일환으로, 실연에 상심해 자살한 것처럼 연극을 해 보자고 합니다. 페란도와 굴리엘모는 정말로 독약을 먹고 쓰러진 척을 하고,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는 기절초풍 놀라고, 알폰소는 의사랍시고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를 남장시켜 데려옵니다.
이 아가씨들은 자기 잡 하녀가 남장하고 나타나도, "처음 보는 신사분이 오셨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요. 누가 쓰러졌다기에 워낙 혼비백산해서, 하녀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로 놀라기라도 했나 봅니다. 이 하녀 데스피나는 나중에는 결혼 공증인으로 한 번 더 변장하는데, 그 때도 이 아가씨들은 데스피나를 못 알아봅니다. 자기 집 하녀라는 것도, 아까 의사랍시고 찾아온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것도요.
의사로 변장한 데스피나는 쓰러진 남자들에게 자석을 갖다대더니, 완전히 치료되었다고 말합니다. 가짜 독약을 마시고 죽어가는 척 하고 있던 페란도와 굴리엘모는 대본에 맞춰 살아난 척 하지요. 그러고는 도라벨라와 피오르딜리지에게 냅다 달라붙고, 도라벨라와 피오르딜리지는 이번에도 화를 내며 뿌리칩니다. 그 와중에도 페란도와 굴리엘모 쪽에서는 "역시 우리 약혼녀들은 우리에 대한 정절을 지켜, 다른 남자를 거부하는구나!"라는 식으로 속으로는 뿌듯해하고 있고요.
다니엘 바렌보임 2002년 지휘한 공연의 의사 등장 장면입니다. 피오르딜리지 역에 도로테아 뢰슈만, 도라벨라 역에 카타리나 캄머로어, 굴리엘모 역에 한노 뮐러-브락만, 페란도 역에 베르너 귀라, 데스피나 역에 다니엘라 브루에라, 돈 알폰소 역세 로만 트레켈입니다. 영어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모차르트 시대의 18세기 옷이 아닌, 20세기 중반 즈음의 옷을 입고 있는 공연입니다.
위 영상 부분의 이탈리아어-한국어 대역 대본입니다. 고클래식 대본자료실의 대본에서 인명, 말투 등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의사로 변장한 데스피나는 마술의 돌이랍시고 웬 돌덩이를 드러누운 사람들에게 가져다댄 뒤, 병세가 깨끗이 나았다고 선포합니다. 각본에 맞춰서 원래부터 아프지도 않았던 페란도와 굴리엘모는 깨끗이 나았다고 말하며 쌩쌩해지고요. 그리고 죽다 살아났다는 핑계로 자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합니다.
<코지 판 투테>에서 자석으로 치료한다는 설정은, 쓰러졌던 사람이 멀쩡히 일어날 핑계를 제공하는 코미디 요소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작가가 만들어낸 코미디 요소만은 아닙니다. 18세기에 프란츠 안톤 메스머의 자석치료요법이 유행했던 것에 기반을 둔 해프닝입니다.
자석치료요법을 만든 프란츠 안톤 메스머 Franz Anton Mesmer (1734~ 1815) 의 초상입니다. 1815년 죽을 즈음 제작된 초상 동판화입니다.
<코지 판 투테>가 발표되었던 1789년은 프란츠 안톤 메스머의 자석치료요법이 한창 인기를 끌 때입니다. 프란츠 안톤 메스머는 최면요법을처음으로 개발한 인물입니다. 새로운 치료법을 찾다가 우연히 최면요법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되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성공했던 것도 있었지만 완전히 헛다리 짚은 발상도 있었습니다. 자석치료요법은 후자에 속했습니다.
자석치료요법이란 말 그대로, 자석에는 신비한 힘이 있으니 병을 고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쇳덩이를 마구 끌어당기는 자석은 신비해 보였는데, 그런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의 병도 낫게 해 줄 것이라는 것이었어요. 메스머는 체내에 보이지 않는 액체가 있고, 자석이 그 액체를 끌어당기면 사람이 건강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메스머의 자석치료요법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건강해지려는 사람이 거대한 자석에 손을 대고 있거나, 자석을 잔뜩 가져다둔 방에서 지내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 외에도 온갖 방법으로 자석과 접촉하면서, 의학치료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메스머가 고안한 자석통입니다. 통 안에는 쇳조각과 유리가루가 잔뜩 담겨 있으며, 통 윗부분에는 구부러진 쇠막대가 여러 개 달려 있습니다. 이 쇠막대를 아픈 곳에 대면, 전기의 신비한 힘이 쇠막대를 통해 몸에 전해져, 사람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석치료요법을 받았더니 건강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 증언 덕에 자석치료요법은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고요. 비타민제를 좋은 약이라고 말하고 주어도 차도가 있다는 플라시보 효과인지, 아니면 자석을 대고 있느라 평온하게 앉아았는 것이 의도치 않은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그냥 본인이 그렇게 느낀 것인지, 여러 가지 원인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자와 의사들은 자석에 그런 힘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메스머와 자석치료요법의 인가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습니다. 메스머는 극적 효과를 더하기 위해 마법사들이 입을 법한 옷을 입고 자석치료요법을 시행하기 시작했는데, 이 일이 빌미가 되어 당국에서 메스머를 철저하게 조사하게 됩니다. 당국에서는 조사 결과 메스머의 자석치료요법에는 근거가 없다는 결론이 내렸다고 발표했지만, 자석치료요법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자석에 신비한 힘이 있고, 자석이 사람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대체요법으로 개발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석치료요법 외에도, 엉뚱한 사물을 만병통치약이랍시고 떠받든 사례는 상당히 많습니다. 자석은 최소한 몸에 무해하기라도 합니다. 동양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불로불사의 단약은 수은을 첨가해 만드는 것이라 오히려 수명을 단축시켰습니다. 20세기 초 라듐이 막 발견되었을 때는, 신비한 광석이니 만병통치의 힘이 있을 거라면서, 라듐을 섭취하거나 생활용품에 넣는 것이 유행했던 적도 있답니다. 심지어 신비한 빛을 내는 라듐을 멋을 낸답시고 치아나 손톱에 발랐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자석을 만병통치약으로 떠받들었던 것은, 최소한 무해하지는 않은 해프닝이라고 해야겠지요.
'오페라와 역사의 만남 > 오페라 속의 과학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나체크의 <마크로풀로스 사건>과 화학합성염료 알리자린 (0) | 2016.12.17 |
---|---|
하이든의 <달세계>와 달에 대한 18세기의 대중인식 (0) | 2015.06.06 |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과 몽유병에 대한 당대의 인식 (0) | 2014.08.09 |
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와 자동인형 오토마톤 (0) | 2014.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