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과학의 만남/역사를 도운 과학

진시황릉 병마용과 화학 보존 기술

아리에시아 2014. 12. 20. 11:03

진시황의 병마용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재입니다.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를 수립한 진나라의 진시황은 자신이 묻힐 무덤에서도 생전의 위용을 갖추기를 원했습니다. 수천 명의 병사들에게 호위받는, 장대한 정경을 무덤에 만들고자 했지요. 그래서 사람 크기의 흙인형을 만들어 무덤에 부장했는데, 현재까지 발굴된 것만 수천 점에 이릅니다. 이 흙인형들이 바로 진시황릉의 병마용입니다.

 

 

진시황릉 병마용이 공개된 모습으로, 이 정경은 이때까지 발굴된 것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합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부분도 많고요.

 

 

병마용의 세부 모습입니다. 갑옷, 머리 모양, 표정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지요. 이 병마용들은 틀에 찍어낸 것이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빚어 구운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이 생긴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병마용의 모습은, 이렇게 단색의 엄숙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병마용들이 완성되었을 때에는, 흙을 빚어 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천연 염료로 채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흙을 빚어 굽고, 옻칠과 염료 채색을 덧입힌 것이지요.

 

 

현재 염료가 남아 있는 부분입니다. 이 시대의 갑옷은 철조각을 가죽끈 등으로 엮은 형태였는데, 끈 부분에 붉은 색으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갑옷과 의상 부분에도 희미하게 황색 염료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채색은 2천여년 동안 땅에 묻혀 있으면서 대부분 퇴색되었습니다. 드물게 채색이 남아 있는 병마용이 출토되기도 했지만, 공기에 노출되면서 오래지 않아 바스러졌습니다. 상대습도 84도 이하의 환경에서는, 병마용에서 코팅 역할을 하던 옻칠 층이 갈라져 벗겨지게 됩니다. 옻칠이 갈라지면서, 옻칠 위애 채색된 염료층도 자연히 같이 떨어져 나가게 되고요. 이 문제는 너무나도 심각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문화재 보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과학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발굴을 사실상 중단하는 조치를 하기도 했습니다.

 

흙인형 위에 칠한 옻칠이 공기 중에서 굳으면, 병마용에 칠해진 옻칠 성분은 화학적으로 효소가 작용하여, 매끄러운 암갈색 옻칠로 결합되고 고정됩니다. 이 때에는 페놀 수지 같은 형태를 띠게 되지요. 그런데 이 옻칠은 물에도 유기 용매에도 녹지 않고, 수분 포화 상태일 경우 매우 미세한 구멍이 생긴 구조라서, 덧칠된 채색을 고정시킬 수가 없습니다. 고이 모셔도 채색층이 저절로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2002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이드록시에틸메타크릴레이트(HEMA)라는 기술이 도입됩니다. 이것은 일부 플라스틱에 사용되는 단위체(구성 성분)으로, 수용성이기 때문에 발굴 직후 땅 속에서의 습기찬 상태로 대기에 갓 노출된 병마용에 직접 바를 수 있습니다. 그 화학물질을 바른 뒤에는, 반드시 굳히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굳히는 과정을 거치면, 화학물질의 구성 성분은 옻칠을 고정하고 안정화시키는 중합체로 결합하게 됩니다.

 

하지만 병마용은 너무나도 높은 습기를 함유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이온 중합법은 통용되지 않았습니다. 옻칠은 빛을 통과시키지 않기 때문에, 자외선을 이용해 경화 처리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화학 기술은 이런 난제에서도, 또다시 새로운 답을 내놓았습니다.

 

 

전자가속 장치에서 전자빔(베타선)을 쬐어 경화 처리를 하면, 전자빔은 옻칠을 통과하고 병마용의 흙 재질 표면에서 멈추게 됩니다. 이 떄 중합체 결합현상은, 옻칠과 채색층의 접착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병마용-옻칠 경계층에서 시작하여  공기와 만나 산소 성분과 접촉할 떄까지, 옻칠과 채색층 사이에서 진행됩니다. 이것은 병마용 표면의 광택을 없애주어 병마용의 사실적인 느낌을 그대로 보존하는 효과를 지닙니다. 또한 전자들이 병마용을 뚫지 않고 병마용에서 멈추면서, 전자 에너지는 방사선 형태로 자유롭게 되어, 옻칠을 훼손할 수 있는 병마용 내의 미생물과 균를 죽이는 '방사선 제동복사' 효과도 수반하게 됩니다.

 

이러한 중합체를 경화하는 방법을 통해, 옻칠과 채색층을 수천 년간 보존되어온 상태 그대로 고정시킬 수 있게 됩니다. 화학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보존 처리 기술이 개발되면서, 병마용은 원래의 채색을 계속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포스트의 화학적, 과학적 설명은 <화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내용을 참고한 것입니다. '화학은 지친 병사들을 즐겁게 해 준다'라는 챕터에서, 병마용의 화학 보존 처리 개발 기술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번역이 잘 되어 있으나, 독일어 화학책을 원어에 충실해 번역하다 보니, 독일어 원문을 직역하느라 그랬는지 한국 용어와는 동떨어진 표기가 간혹 나옵니다. 에를 들면 거울상 이성질체에 대해 설명하면서, 탈리도마이드라고 알려진 약을 독일 상품명이었던 콘테르간으로 표기하고 있는 대목 등이 그렇지요. 그런데 탈리도마이드/콘테르간 정도를 제외하면, 독일어 원문을 직역한 것으로 추정되는 어색한 표현은 거의 대부분 이 챕터에 몰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국의 용어와는 다른 어색한 표현들은, 현재 한국에서 통용되는 표현으로 교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테라코타 병사, 점토 병사->병마용

천연 래커, 래커 칠->옻칠

 

그리고 '가공하지 않은 작품 재료'라는 표현도, '덧칠되지 않은 상태의 흙인형'정도가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축축한 상태의 테라코타 발굴물'도 '습기에 찬 상태의 발굴 직후 병마용' 쯤이 더 적절할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