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중국에서는 명나라 황제인 만력제와 그 황후의 능인 정릉을 발굴합니다. 정릉은 도굴 피해가 없던 무덤이었기에 수많은 부장품이 원형 그대로 출토되었고, 특히 명나라 황실 의복이 다수 발굴되었습니다. 이 유물들이 현존한다면, 명나라 복식 연구에 굉장히 귀중한 유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958년 중국에는 수백 년 동안 묻혀 있다가 공기와 접촉한 옷감을 보존처리할 기술이 없었고, 부장된 의상들은 출토 직후 훼손되고 맙니다. 당시 보고서조차 제대로 작성되지 않았기에, 당시 출토된 의상 부장품 사진초자 변변히 남아있는 것이 없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보존처리를 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공식적으로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관련인들의 증언 등을 종합하면, 정릉에서 출토된 의복 유물들을 보존처리랍시고 화학약품을 뿌린 뒤 유리판 등에 빨래 널듯이 펼쳐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실제로도 이 수준이었을 듯합니다. 정릉은 몇 년 후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정릉의 출토품 일체가 불태워지면서, 빈약한 보존처리기술 때문에 출토된 의복들이 훼손되었다는 것은 어영부영 묻히게 되었습니다만.
땅 속에 묻혀 있던 옛날 의상이 출토되는 사례는 희귀하며, 복식사를 연구하는 데 더없이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부장품으로 직물이 출토될 경우 제대로 보존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때 출토된 직물 유물들은 거의 대부분 훼손되었으며, 형체조차 현존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냉동처리 및 탈수보존 기술이 발명되면서, 비로소 오랜 세월 땅에 묻혀 있다가 발굴된 직물 유물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냉동식품과 비슷한 원리로, 직물의 습기 및 물기 일체를 제거하고 낮은 온도에서 보존하면, 직물 유물의 보존성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복원하기에도 더한층 용이해졌기에, 직물 유물을 냉동처리하고 탈수보존하는 기술이 발명된 이후, 복식 문화재 보존 및 복식사 연구가 진일보하게 됩니다.
직물보존처리기술은 아직도 연구 및 발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예전 기술로는 보존처리가 불가능했던 재질이나 상태의 직물 유물을 보존하는 새로운 기술도 지속적으로 발명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한국의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지난 2009년 직물 출토품 중 훼손된 금박을 복원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006년 발굴된 17세기 행주 가씨 묘에서 출토된 금장식 치마와 저고리를 이 기술로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박물관 홈페이지에도 관련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http://www.nfm.go.kr/Display/newDis_view.nfm?seq=11&nowPage=4&searchColumn=&searchWord=
행주 가씨 묘에서 출토된 직후의 저고리, 치마 유물 사진입니다. 300여년동안 땅에 묻혀 있었던 것치고는 보존상태가 굉장히 좋습니다만, 금박 장식만은 옷감에 금박 장식이 있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상태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금박 보존 기술을 개발, 실험하는 과정에서의 사진입니다. 특수 처리한 아교로 금박 성분을 고정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자 했는데, 가장 적합한 농도를 확인하는 실험만 수백 번을 거듭했으며, 그 외에도 아교 굳기 등 변수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아교가 굳으면서 금박 표면을 딱딱하게 만들거나, 아교가 금박에 달라붙어 금박 색이 변하는 사태를 일으키는 등이었습니다.
특히 전하의 전기적 현상이 금박보존처리에서 큰 장애물 역할을 했는데, 이런 작업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접착제인 아교가 수용성 접착제라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수용성 접착제인 아교에는 물 성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물 분자는 전기적으로 극성을 띠는데, 금박은 전기적으로 중성을 띱니다. 전기적으로 중성을 띠는 물체가 극성을 띠는 물체와 접촉할 경우 전하가 쏠리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금박보존처리를 위해 아교 성분을 치마 유물과 접촉시킬 때에도 어김없이 이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금박에 전하가 쏠리면서 금박에서 금 원자가 전기적으로 양전하를 띠는 부분과 음전하를 띠는 부분이 병존하게 되었고, 이 두 부분은 전기적으로 서로 뒤엉키게 됩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수백 번 이상의 실험을 거듭한 결과, "파라로이드B-72를 물에 1% 희석한 접착제를 3회에 걸쳐 주입했을 때" 접착 효과가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파라로이드B-72는 물이 아닌 유기용매를 사용하는 유기용제로, 수분이 없기 때문에 전하현상 때문에 금박이 뒤엉키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수용성이 아니라는 것은 또다른 장점이 있었는데, 수용성이 아니기에 물로 접착해도 접착력이 약화되지 않아서, 물 세척이 기존 기술보다 훨씬 수월해진 것입니다. 또한 표면장력이 작다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파라로이드 B-72의 표면장력은 물의 3분의 1 수준이었는데, 수용성 아교는 물의 표면장력 때문에 접착제가 한지에 흡수되지 않고는 했는데, 이에 비해 표면장력이 훨씬 작아서 한지에 훨씬 잘 스며들었던 것입니다.
파라노이드B-72가 개발되지 않았다면, 금박장식 직물 유물의 금박 보존 처리기술은 이 신기술의 수준보다 훨씬 수준이 낮았거나, 아예 관련 보존기술이 제대로 발명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파라노이드B-72는 과학발전 및 화학 연구가 문화재 보존에 기여한 사례 중의 하나로 꼽히기에, 부족하지 않겠지요.
금박처리보존기술을 출토품에 적용해 복원한 후, 별도의 세척 과정을 거쳐 보존처리 과정을 끝냅니다. 출토 직후에는 금박 형태도 희미하고 금박 접착 상태도 불안정했지만, 이젠 물로 씻어내도 금박이 벗겨지지 않고, 오히려 먼지 등이 벗겨지면서 금박이 더욱 또렷해지게 드러납니다.
금박보존처리 과정을 거친 의상 유물이 전시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국 기관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발한 신기술이기에, 전시관에서도 개발된 기술에 대한 설명을 별도로 기재하는 등, 금박보존기술을 비중 높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행주 가씨 묘가 반세기 정도 앞서 출토되었다면 의복 형태도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고, 사반세기 남짓 앞서 출토되었다면 금박 장식은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껏해야 희미하게 금박 흔적이 남아있다고 서술되는 정도에 그쳤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지요. 하지만 직물 유물 보존처리기술이 발전한 덕에, 수백년 동안 땅에 묻혔던 치마의 금박을 오늘날에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전보다 훨씬 많은 문화재를 훨씬 좋은 상태로 복원 및 보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직물 유물 보존처리기술은 그 발전을 특히 극명하게 체감할 수 있는 분야 중의 하나입니다.
'역사와 과학의 만남 > 역사를 도운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시황릉 병마용과 화학 보존 기술 (0) | 2014.12.20 |
---|